1.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독일의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반민주주의·반공산주의·반유대인 정책을 펼쳤다.
나치당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 수용소를 만들고, 유대인을 가둔 뒤 매일 처형자를 골라 가스실에서 죽였다.
강제 수용소의 굴뚝에서는 매일같이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치당이 권력을 잡고 있던 동안 사망한 유대인의 수는 600만 명이나 되는데,
이 중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숫자만 100만~150만 명에 이른다.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 한 사람만의 범죄가 아닌, 독일사회가 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는 구조악에 따른 범죄였다.
미국인이자 유태인 역사학자 마이클 베렌바움(Michael Berenbaum)은 자신의 저서에서 “국가(독일)의 정교한 관료제의 모든 부서가 학살 과정에 관여하였다.
독일교회와 내무부는 유태인들의 출생기록을 제공하였고, 우체국은 추방과 시민권 박탈 명령을 배달했으며, 재무부는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독일 기업들은 유태인 노동자를 해고하고 유태인 주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다”고 썼다.

이와 더불어 대학교들은 유태인 지원자들을 거부하였고, 유태인 재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으며 유태인 교수들을 해고하였다.
교통부는 강제수용소로 이송할 기차편을 운영하였다. 독일 제약 회사들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생체실험을 행하였고,
기업들은 화장터 건설계약권을 따기 위해 경쟁하였다. 또한 데호막(Dehomag)(독일 IBM 지사)사의 천공카드를 이용하여 사망 수치를 매우 정밀하게 측정하였다.
수용자들은 집단 학살 수용소에 들어가면서 모든 개인 소지품을 반납하였고, 이는 다시 재분류되어 독일로 보내져 재활용되었다.
또한 독일 중앙은행은 비공개 계정을 통해 유대인학살 피해자들에게 갈취한 재산을 세탁하는 데 일조하였다.
베렌바움은 저서에서 이러한 궁극적 해결책이 “가해자들의 눈에는 ...독일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라고 기술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자울 프리트랜더(Saul Friedländer)는 저서에서 “독일과 유럽 전역의 어떠한 사회적 집단, 종교 집단, 학술 기관 혹은 협회도 유태인과의 유대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그는 반유태주의적 정책들이 일반적인 대항 세력(기업, 교회, 기타 이해관계자 등)의 별다른 반대 없이 펼쳐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가 독특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트라우마로 미국금융을 점령한 유대자본은 현재 인류를 괴롭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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